✨ 어쩌다, 오스테리아 샘킴
흑백 요리사 시즌2의 열기가 조금 식었을 때 쯤, 여자친구가 손종원 셰프의 식당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예약이 어렵지 않을까? 한 번 찾아보자. 그래서 둘이 카페에 앉아서 캐치 테이블을 열심히 뒤졌다.
유명 셰프들의 식당들은 역시나, 가격도 가격이지만 예약도 무척이나 어렵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보던 중, 여자친구가 오스테리아 샘킴은 예약이 된단다. 근데 그게 석 달 뒤란다. 웃겼다.
나는 철학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방송에 나오는 셰프들 중 샘 킴 셰프와 최강록 셰프를 좋아한다. 최강록 셰프는 어쩌다 무료로 읽게 된 ’최강록의 요리노트‘ 라는 ebook을 보다가, 이 사람 요리에 대해 진심이구나, 요리와 시간에 신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어서 팬이 되었다. 샘 킴 셰프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연주의라는 철학으로 승패와 상관없이 대결에 임하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그러니까, 가보자 오스테리아 샘킴, 석 달 뒤라도 가보고 싶었다. 심지어 퇴근하고 가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2시간 정도 휴무도 사용해야했다.
오스테리아 샘킴은 여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입구가 여기가 맞는지 계속 의심되는 정도. 대신에 한적함과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휴무를 쓰고 간 내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칼퇴해서 오기로 한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찬찬히 메뉴판을 구경하다가 주문을 했다.





🍆 멜란자네 (Mozzallera cheese in eggplant)

얇게 썬 가지 사이에 모짜렐라 치즈를 넣고 감싸서 토마토소스와 함께 구운 요리이다. 단순한 요리에 단순한 맛일거라 기대했다. 실제로 여자친구도 멜란자네는 본인도 만들 줄 알고 쉽고 맛있다고 했다. 셰프의 멜란자네는 어떨까? 기대를 가지고 플레이팅을 받고, 향을 음미했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가 합쳐지면 나는 왜 그냥 피자 냄새처럼 느껴질까? 향은 그냥 피자 냄새였다. 근데, 이게 맛있는 향이지 뭐 한 입에 쏙 넣어서 씹어먹었다.
부드러움 그 자체 !! 정말 부드럽고 또 부드럽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말 그대로 입에서 녹아 없어진다. 어떻게 가지가 있는데도 이렇게 사르르 녹지? 정말 놀라운 부드러움이다.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부드럽다는 것. 그래서 가지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가지를 느낄 새도 없이 맛있게 가지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지를 먹은거 같지 않다. 는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 흰살생선 엔초비 오일 파스타 (Oil spaghettini with halibut & anchovy)

오스테리아 샘킴의 후기를 찾아보면, 음식이 생각보다 짜다라는 평이 많았다. 엔초비 파스타를 시키니까, 비슷한 설명을 해주셨다. 엔초비 파스타는 염도가 좀 강합니다. 엔초비가 간을 조절 할 수 없어서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친절한 물음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는 엔초비 파스타에 약간 환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취를 오래 하다보면 으레 요리에 손을 뻗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때는 ebook으로 레시피북을 보는게 취미였다. 그 때 구매했던 레시피북 중에 가장 좋아했던게 집에서 이탈리아 가정식 이었다. 정말 간단한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 손쉽고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레시피 리스트 중에 가장 쉽지만, 가장 도전하기 어려웠던게 엔초비 파스타였다. 한두푼이 아쉬운 대학생이 엔초비라는 미지의 식재료에 돈을 쓰는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염도가 강하다는 말에 살짝 걱정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많이 짜진 않았다. 조금 짭짜름하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짭짜름한 엔초비의 감칠맛이 입맛에 맞았다. 역시 싱겁게 먹는거보다는 짜게 먹는게 맛있다.
여자친구는 구운 방어살이 아니면 평범한 엔초비 파스타 맛 이라고 했다. 구운 방어살이 이 파스타의 킥 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생선이 들어간 파스타는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담백해서, 짭짜름한 엔초비 파스타에 찰떡인 바리에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트러플 생면 파스타 (Tajarin with truffle / fresh noodle)

파스타에 대한 내 또 다른 로망이다. 바로 생면 파스타. 냉부에서 15분 만에 생면을 뽑아서 요리하는 모습들은 자주 봤지만, 차마 집에서는 시도해 볼 수 없었던 바로 그 것. 그리고 아직까지 한 번도 못 먹어본 바로 그 것.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이라 가격대가 있어서 메뉴를 마음껏 주문할 수 없기에 마지막 선택지 고민을 많이했다. 스테이크를 먹을까? 해산물 요리를 먹을까? 그래도 샘 킴은 파스타 라는 생각에 세번째 요리도 파스타로 선택했다. 파스타라는 선택지에 후회가 남지 않게 주문하기전에 한 번 더 물어봤다. 소스는 뭐에요? 버터 베이스입니다. 그럼 오일 파스타인 엔초비랑은 안겹치겠네? 여러모로 합격이었다.
처음 먹어본 생면 파스타는 뭐랄까.. 파스타와 국수 사이의 무언가의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파스타보다 훨씬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이었다. 엔초비 파스타가 알단테로 나와서 더 비교가 되는 부드러움이었다. 그렇다고 생면 파스타가 무조건 더 맛있다? 라고 표현하기엔 둘의 색깔이 너무 다르다. 생면 파스타만의 매력이 있는게 맞는거 같다.
면의 식감과는 별개로 버터 베이스의 소스도 무척이나 맛있었다. 트러플 향은 너무 도드라지지 않고, 은은했다. 매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트러플 향을 좋아해서, 톡 쏘듯 더 강해도 맛있었을거 같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하고 맛있는 순간들이었다. 조그마한 가게의 분위기도 음식도 좋았다. 맛있기로 유명한 파스타들을 여럿 먹어본 사람이라면 좀 평범하게 느껴질 수 도 있을거 같다. 확실히 나에게도 이건 진짜 미쳤다. 꼭 먹어야한다. 와 같은 강렬한 이미지는 남지 않았다. 자연주의라서 그런건 아닐까?
여자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드라마 파스타*가 떠올랐다. 샘 킴 셰프가 그 드라마 속 셰프의 모델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도 났다. 그 드라마 이전에는 파스타라는 음식이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생각까지 떠오르자 혹시 샘 킴 셰프의 파스타가 우리나라 파스타 맛의 기준이 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영화 대부를 처음 봤을 때 처럼,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명작이지? 라는 의문에 찾아본 결과 대부가 마피아 영화의 시초이자 기준 이었던것. 어쩌면 샘 킴 셰프의 파스타도 그런게 아니었을까싶다.
이걸로 오스테리아 샘킴 내돈내산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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